[책마을] 북촌·익선동 한옥마을 100년 전에도 '핫플레이스'

입력 2017-02-02 17:25   수정 2017-02-03 05:48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김경민 지음 / 이마 / 220쪽 / 1만5000원



[ 양병훈 기자 ] 삼청동과 가회동 일대 대규모 한옥단지인 북촌 한옥마을은 거대도시 서울의 한복판에서 보기 드물게 600년 고도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 고색창연한 지역이 1920년대 이후 근대적 부동산 개발을 통해 조성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최근 서울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익선동 한옥마을도 1920년대 경성의 한 부동산 개발업자가 계획적으로 택지를 조성, 건설해 분양한 일종의 뉴타운이다. 조선시대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이들 지역이 알고 보면 근대 부동산 개발의 뜨거운 현장이었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쓴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경성의 부동산 개발사를 다룬다. 조선 최초의 근대적 부동산 개발업자로 당시 ‘건축왕’이라고 불렸던 정세권을 집중 조망한다.

저자에 따르면 정세권은 당시 북촌 등 경성 곳곳에 한옥 대단지를 조성해 도시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한 인물이다. 정세권이 지은 한옥은 전통 한옥이 아니라 일종의 ‘개량 한옥’이었다. 그는 큰 한옥을 부수고 그 자리에 작은 한옥 여러 채를 지었다. 좁은 면적에 맞춰 안채, 사랑채, 행랑채를 트인 ‘ㅁ’자형 건물에 압축해 넣었다. 화장실을 한옥 안으로 넣고, 부엌을 입식 구조로 바꿨으며, 외부공간이던 대청마루를 내부 공간인 거실로 바꿨다.

이런 한옥 개조와 대단지 개발에 힘입어 낡고 오래되고 불편했던 도시는 새롭고 편리하고 현대적인 도시로 변모했다. 이윤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공간 효율을 높이는 데만 관심있던 일부 도시개발업자와 달리 정세균은 채광, 통풍 등 환경적 요인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 덕에 경성 도시민들은 도시화 과정에서 으레 나타나는 비참하고 불결한 생활을 피할 수 있었다. 이런 개량 한옥의 확산은 옛 도시를 헐고 그 자리에 서양식·일본식 주택을 지으려고 한 일본에 맞서 전통 건축양식을 지키는 효과도 있었다. 저자는 “정세권이 없었으면 서울에서 한옥은 거의 씨가 말랐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정세권은 민족운동가였다. 일제에 맞서 신간회, 조선물산장려운동, 조선어학회 등에 참여하며 당대 민족 지식인들을 지원했다. 이런 이력 때문에 그는 일제에 의해 고문받고 재산을 강탈당했으며 사업은 쇠락의 길에 빠졌다. 저자는 “건축왕 정세권을 기억한다는 것은 민족운동에 투신한 현대적 기업가이자 혁신가를 기억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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